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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episode3. 다이닝 포레스트
작성자 Tailorcoffee (ip:182.211.203.183)
  • 작성일 2019-01-20 11: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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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다이닝 포레스트  dining forest

 커피 프린스길에 콧바람 쐬러 갔다가 열흘만에 계약과 인수까지 하게 카페 이름은 다이닝 포레스트였다.

10년이 흘러 되뇌어 보아도 괜찮은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에서 <다이닝>이라는 것을 치의 깊은 고민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시작을 하려고 했던것. 부분에서 우리의 실수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첫단추가 분명 잘못 끼워진게 맞다. 

 3개월만 준비하면 알았다. 그게 말이 ? 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인수하고자 하는 카페의 운영

식을 3개월동안 집중해서 잘만 배우면 바로 오픈 있겠다 싶은 계획을 갖고 계신 분들이 현재에도 분명 어딘

가에 무수히 많이 계시리라 짐작된다. 여기서의 준비란 처음으로 커피를 배우고, 처음으로 다이닝에 적합한

요리를 배우며, 처음으로 고객이라는 분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처음으로 타인에게서 돈을 받고 우리의 공간을

운영해보기 위한 준비를 말한다. 우리에게 완전하게 공간을 인수하여 넘기기까지 3개월밖에 시간이 없었고,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3개월이면 알았다. 

 

 그때의 여름 7월과 8 그리고 9월을 잊을 수가 없다. 광화문의 어느 곳에 다이닝에 적합한 요리들을 배우기

해서 매일 우리는 시간맞춰 뛰었다. 같이 배우는 분들은 모두 여성분들이었는데 우리 부부를 신기해하고 부러워  

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발등에 떨어지고 무언가 갑자기 사고를 같은 느낌은 들어서 사정 얘기 틈도 없었고, 일분 일초 한시간

소중하고 귀했다. 우리가 카페를 오픈할 것을 알고 소스 한가지를 만들어도 정성을 다해 알려주신  그때의 선생

님들을 떠올려보니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속으로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지. 

낮에는 다이닝 포레스트의 바리스타와 함께 남편이 커피를 배우고 내려보며 적응을 해나갔고, 나는 배운 요리들로

메뉴들을 뽑아 틈나는대로 열심히 연습했다. 

해보자고 작정하여 세팅된 다이닝 메뉴의 가짓수가 무려 열가지 이상 되었다. 어니언 수프, 브로콜리 수프,

치킨샐러드, 명란 파스타, 시금치 펜네, 수제버거, 핫도그, 바나나팬케이크, 프렌치 토스트, 프렌치 프라이, 수제

함박스테이크, 나쵸 치즈..

 인수 받기로 다이닝 포레스트에서 원래의 메뉴들까지는 전수 받지 못했었다.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으셨기에

우린 우리만의 메뉴들을 다시 짜서 만들어야 했는데, 위의 두가지 메뉴들을 코딱지만한 안에서 모두 만들

낸다는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것도 요리는 혼자. 커피와 음료들은 남편이. 둘다 장사라는 것은 처음  

해보는것이고 실전에서의 경험이 없는, 실속있게 튼튼히 준비가 안된 우리는 인수도 쉽게 받고 오픈도 재빨리

. 그래도 왠지 같았던 막연한 긍정이 넘쳐 흘렀다. 다이닝의 메뉴가 개가 되어도 모두 있으리라

마음이 부풀었다. 음료의 메뉴가 스무 가지가 되어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음부터 모두 나갈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만 콩깍지가 씌어 하는게 아니라 장사도 잘못하면 콩깍지가 씌어 있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결혼이야 아주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맞춰가며 살아가는 재미라도 있고 살면서

보람도 느끼는데, 장사는 그렇지 않았다. 시작하는 순간 살아남기, 즉시 생존과 생계가 걸린 문제였다. 

더욱이 부부가 함께 장사에 올인을 것이라면, 잘못하면 장사의 콩깍지에 결혼 생활까지 위태로워

있는 문제로 번질 있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모험은 다이닝 포레스트를 우리 부부가 장사로

시작한 것이다.  물론 모험이었는지 몰랐기에 뛰어내린 혼돈과 이상의 세계였다. 지금도 겁은 별로 없지만, 그때는 

겁이 없었던 같다. 

 

 다이닝 포레스트의 오픈 날은 결과적으로는 대박이었다. 그러나 다시 떠올리기도 꺼려지는, 잠깐 생각만  

그때로 돌아가 한없이 긴장되곤 하는 순간들은 우리에겐 전혀 즐겁지 않은 너무나 무서운 악몽이었고,

자체, 전혀 환상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 카페 오픈 날이었다. 부부가 함께하는, 우리가 함께인 카페에

귀여운 로망은 첫날로 처참하게 끝나버렸다.  

 

 장면으로 설명하자면 호떡집에 불난 격이라 하겠다. 단어로 축약하자면 .... 

  오픈 오후로 넘어가며 구석진 좁고 어두컵컴한 골목안 다이닝 포레스트로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드는데

 삽시간에 공간이 찼다. 만약에 우리 부부가  엄청난 내공을 쌓아놓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았더라면  

날의 밤은 축배의 샴페인을 터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물밀듯이 몰려드는 사람들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날은 더군다나 월요일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고, 그정도로 시작부터 만석의 행진이 이어질 몰랐다. 

3개월 동안 공간을 밤낮 안가리고 드나들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은 카페도 아니었다. 그럴만한 골목길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그곳에서 시작을 조용히 차근차근 해보려는 마음도 있었던건데

장사라고는 처음 해보는 우리에게 안성맞춤인 적당한 위치의 디자인도 마음에 드는 카페라고 판단했었던건데. 

 첫날부터 인생은 우리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명란 파스타, 시금치 펜네, 갑자기 수제버거, 저기서 바나나 팬케이크, 여기서 프렌치 토스트주문이 정신없이 

들어오고, 생각해두고 해보았던 모든 시뮬레이션들은 순간에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우린 서로 쳐다보며 어떡하

지라는 눈빛만 교환했을뿐. 빨리 정신차리고 어떻게든 음식과 음료가 나가야 했다. 다음부터는 조금 과장하자면

후라이팬들이 날라다녔다. 정말 울고싶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벌인거지. 사람들은 갑자기 어디서 온거지. 오늘

월요일 아니었어? 다들 월요일 저녁에 집에 안가고 뭐하러 홍대 길을 다니는거지? 완벽하게 준비할걸. 준비

했었어야 했는데. 

 후회와 스스로들에 대한 원망, 자책의 감정이 뒤섞인채 아무튼 10시까지 모든 주문된 메뉴들이 나가고

객분들을 맞이함에 있어 문안하게 끝을 맺긴 했다. ‘공식적으로. 결과적으로' 그랬다. 그러나 속은 엉망이었다. 

 너희들이 하려고 했던, 꿨던 카페라는 곳은 이렇게 오늘처럼 돌아가야 너희가 그래도 조금이나마 신이 나서  

있는거야. 날부터 보여줬는데 자신있어? 라고 어디선가 누군가가 귀에대고 놀리며 속삭이는 같았

. “자신없습니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었고, 처음으로 오랜 시간 떨어져있어서 걱정이 되었는지 우리집 강아지 민트가 심하게

겨주고 뽀뽀해주었다. 민트도 카페에서 같이 있으면서 모두 함께이기를 바랐던 우리가 몰라도 단단히 몰랐구나

싶었다. 결혼 2개월 우리가 함께 입양한 민트는 하루에 이렇게 우리와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적이 없었는데.

이런 저런 걱정들로 우린 잠을 수가 없었다. 오픈날 대박이 나도 이렇게 절망할 수가 있는거구나. 처음 알았

. 그런데 절망한거에요? 계속 오늘처럼 앞으로도 하면 되는거 아닌가? 하고 묻는다면,

첫째, 돈도 그럭저럭 벌고 환상적일거라 상상했던 카페의 운영이 전쟁같다는 것을 날부터 완전하게 깨달았고

둘째, 우리 카페에서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마음의 여유를 누리며 재밌게 살아야지 했던 순진했던 마음들이

우당탕탕 날라다닌 후라이팬들에 산산조각 모두 깨져버렸다. 셋째, 타인인 손님들의 돈을 받고 돈값을 제대로 

하는 가치와 이익 창출에 있어서 우리는 앞으로의 시간들이 뭔가 희미해 보였고, 자신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오셨던 손님들 이상 3분의 2 다시는 우리 카페에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정도면 결과적으로, 공식적으로 대박이건 아니건 속에서는 절망할 이유들이 충분하지 않은가. 

 

 

 손님들이 건네는 돈과 그에 맞는 기대는 카페라는 로망에 비해 한없이 무거웠고 버거운 것이었다. 아무리 집중했

열심히 준비했다 치더라도 그리고 무사히 첫날의 대박행진을 마쳤다 치더라도 3개월만에 뚝딱 마치고 오픈한 

우리에게는, 돈을 받고 내어드리는 결과물들에 있어서 스스로들도 만족을 못하고 앞으로도 계속 괴로울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일은 벌어졌고 시작은 이미 상태. 내일도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우리에게

쳐졌고 어떻게든 부딪히지 않으면 안되는 세계로 뛰어든게 맞았다. 이상 다른 곳으로 다시 뛰어들 세상도 없었

. 오늘 첫날 느낀게 너무 많아서 3개월 준비하고 열겠습니다 같은 말도 안되는 결심과 준비도 소용이 없었다.

우린 그날로 당분간이라도 업을 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아니면 도망가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정면돌파 하거나. 

하나.   

 

 

 

 테일러커피는 매장을 오픈할때 가오픈 기간이라는 것을 정해놓지 않고 바로 정식오픈으로 시작한다.  

무슨 요일만 정하고 직원들에게 공지한채 바로 막을 올린다. 가오픈이라는 시간들이 안주어지는지 의아

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그건 우리가 계속해서 지켜오는 원칙이자 마음가짐이다. 가오픈이라는 시험 기간을

안전하게 두어서 긴장이 조금 풀린채로 정식오픈을 하기보다는 준비하고 준비하고 체크하고 다시 체크하고 시뮬

레이션을 돌려보고 돌려보아서 최대한 완벽하게 정식으로 오픈하기를 바란다. 정식 오픈 날은 우리와 직원들의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리기를 원한다. 그러면 잦은 실수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데, 가오픈 기간이라는게 없다

것을 우리 스스로 인지한 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하기도 하고, 설사 실수들이 일주일이라는 시간들

발생했다 해도 직원들이  상황들을 더욱 실감하고 깊게 체감하며 배우기를 바란다. 아직 가오픈중이니까

괜찮아 라는 안일한 생각과 마음으로 며칠이라도 매장을 오픈하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아마도 원칙은 2009 10 19 다이닝 포레스트의 오픈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반대로 그때의 호된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는것인지.

 

 

 결론적으로 카페 운영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카페라는 이름만큼 낭만적이고 여유부릴 있는 공간이 못된다. 

우리가 걷기로 다이닝 포레스트의 숲길은 후로도 너무나 험했다. 안에서 후라이팬 잡고 울기를 수십 번에 

하루하루 결과물에 대한 우리의 피튀기는 논쟁들은 에브리데이 끝이 나질 않았다. 

 2009 10 19. 우리는 날을 테일러커피의 창립일로 기념한다. 

 그날의 모든 기억들과 경험들, 감정들을 절대로 잊지 말고 살아가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정했다. 최악의 흑역사의 

날을 창립일로 기념하는 . 테이프를 끊고, 장갑낀 손으로 박수를 치는 창립일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가 경영을

해나가는 동안 날의 앞이 캄캄했던 순간은 잊지말자고 약속한 날이기에 소중하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가끔 생각지 못했던 선물들을 준다. 다만, 고난과 책임들을 회피하지 않을때에만.  

대가를 모두 혹독하게 제대로 치뤄야지만 주어지는 선물들인것 같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랬다.  

 불공평한게 인생이니 받아들여라 해도 깊게 들어가 모든 주어진 것들을 따져보면 결과적으로 언젠가는 공평해

지는 때가 올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시절 어슴푸레했던 달빛 하나에라도 의지해서 어두웠고 위험했던 다이닝 포레스트의 숲길을 우리가

걷지 않았다면 모두 몰랐을 진실들이다. 


* 저는 아직도 후라이팬을 잡고 요리하는걸 조금 질색하는 편입니다. 그 시절들 아수라장 기억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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